염지홍의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생각! Creative = Ah!(Idea) + aHa!(Communication)
Creative
창의성
아이디어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낯설게 하기
크리에이티브가 이런거 아닐까 느낄 때가 있다. 그 느낌을 설명하고 싶은데, 막막할 때가 많다.
삼각형 그릇으로 크리에이티브가 나오는 순간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있었는데(맨 아래를 보세요), 이제 저 [크리에이티브 스마일]로 ah!하게 만들고 aha!하며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약속이 없는 날, 여기는 종로 대왕빌딩 13층 마이크 임팩트 엠 스퀘어의 푹신한 소파에 거의 누워 빈둥빈둥 책을 읽는다. 얼마전 동교동 삼거리 정은서점이라는 읽은 책방(헌책방의 새로운 표현)에서 거의 반값에 산 [생각의 완성]이라는 책이다. 이 책에 뭔가 있을 것 같았는 데 숨어 있었다. 읽는 이를 이렇게 웃게 만들 수 있는 책은 정말 고마운 책이다. 71페이지를 읽고 나서 떠오르는 생각을 적었다. 그렸다고도 할 수 있다. 고민하지 않고 한 번에 그리듯 써내려 갔으니까.
"우리는 세상을 보기 전에 세상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어떤 일을 경험하기 전에 그 일을 상상한다. 교육을 통해 예리하게 자각하지 않는 한, 그런 선입관은 우리의 지각 과정 전체를 깊이 지배한다. 그런 선입관은 특정한 물체를 친숙한 것과 낯선 것으로 구분하고 그 차이를 강조하기 때문에, 약간 친숙한 것은 매우 친숙한 것이 되고, 낯선 것은 난생 처음 보는 것이 된다. 그런 선입관은 작은 징후로 촉발되는데, 이런 징후는 진정한 지표에서 모호한 유비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할 수 있다. 일단 촉발되고 나면 그런 선입관은 더 오래된 이미지로 참신한 시각을 온통 뒤덮으면서 되살아난 기억의 세계로 집어넣어 버린다."
이 단락을 읽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것에 대한 생각이 떠올라 책 맨 뒷장에 바로 적었다. 예들 들면 익숙한 세탁소 옷걸이로 독서대를 만드는 것은 낯선 아이디어다. 옷걸이와 일반적인 나무 독서대 또는 책 사이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연결점이 없다. 2009년 무렵 한 친구가 학교에 가져가서 쓰는데 다른 친구가 '무슨, 옷걸이를 독서대로 쓰냐'며 이상하다고 했다고 내게 얘기했던 것이 생각난다. 그런데 얼마 후 신문과 인터넷에 기사가 난 후에는 그렇게 얘기했던 친구가 내게 꼭 하나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하더란다. 처음엔 북스탠드업이라는 이름도 없었고, 그냥 옷걸이 독서대였다. 이름을 붙이고, 어떻게 처음에 만들게 되었는 지, 이 아이디어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더욱 친숙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작업'은 나를 비롯한 가까운 친구들이 함께 했다면, 낯선 것을 익숙하게 만드는 과정에는 훨씬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적극적인 사람은 유튜브를 보고 열심히 연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주기도 하고. 블로그에 만드는 방법을 새롭게 촬영해서 올리기도 했다.과거와 달리 유튜브, 블로그와 같은 커뮤니케이션 채널 덕분에 낯선 것을 익숙하게 만드는 과정이 훨씬 수월해졌다. 신문, 잡지, 방송 등의 기존 언론이 관심을 가진 것도 익숙하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형태를 변형시켜 기능을 바꾸는 것은 아이디어다.
그 방법을 사람들이 이해하고 익숙하게 만드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이다.
손을 써서 만드는 방법을 구상하는 것과 말, 글자, 그림, 사진, 영상으로 그 방법을 설명하는 것을 모두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Idea는 아(Ah)! 하는 낯설음에 놀라는 순간을 만들고
Communication은 아하(aHa)!하고 이해해서 익숙하게 만든다.
Design은 이 모든 과정이기도 하고 더욱 부드럽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크리에이티브= 아! + 아하!
Creative = Ah!(Idea)+aHa!(Communication)
"크리에이티브 디자인은 '아!'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찾아내고, '아하!'하고 이해하고 익숙하게 하는 커뮤니케이션이다."
- 2012년 2월 25일 부터 3월 12일 까지 16일간 진행되었던 2041 국제남극탐사 2012년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돌아왔습니다. 영국문화원과 로이드 인증원(LRQA) 및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지구의 가장 남쪽 끝에 있는 땅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로버트 스완 대장이 이끄는 국제남극탐사팀 2041의 훌륭한 프로그램과 헌신적인 팀 스태프 덕분에 남극을 더욱 잘 느끼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2003년부터 매년 한 차례 전세계에서 모인 열정적인 사람들을 이끌고 험한 파도를 헤치고 남극에 이르렀던 노하우를 갖고 있는 탐사대입니다. 올해는 2012 팀 인스파이어라는 이름아래 22개국에서 온 72명의 사람들을 뭉쳤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지구를 위한 지속가능성에 대해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구의 땅끝에 오겠다는 놀라운 열정과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모였기에 서로에게 멋진 경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2041이라는 팀 이름은 대한민국과 영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들이 함께 맺은 남극 보호 조약이 만료되는 해인 2041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남극은 그 어느 나라, 어느 누구의 소유도 아닌 인류 공동의 재산입니다. 그러나 한 때 많은 고래잡이 배와 무분별한 남극지역 활동으로 남극의 환경이 오염되고 생태계가 파괴될 뻔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며 적어도 향후 50년 동안 그 어느 국가도 남극을 더럽히거나, 개발해서는 안된다는 조약을 맺었습니다. 이번 탐사 활동 역시 남극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미리 남극 보호 관련 협정에 따라 교육을 받았고, 서로 관련 규정을 지키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남극 뿐만 아니라 점점 바뀌어가는 기후로 인해 자연과 인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막을 수 있는 다양한 사례와 아이디어를 나누는 짧은 기간의 교육 과정이었습니다. 직접 보고 느낀 것을 각자의 일터로 삶으로 돌아가 전하자는 다짐으로 각국으로 돌아갔습니다.
2. 남극으로 가는 도전 과정
지난 해 10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렸던 E-idea 컨퍼런스에서 2041 국제남극탐사대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42명의 E-ideailst 중 한 명에게 남극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남극?’이라는 물음표를 머리와 마음에 담았습니다. 꼭 가고 싶었습니다. 남극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습니다. 지난 해 말 남극에 갈 행운의 한 명을 뽑는 과정에 지원했습니다. 반드시 가겠다는 마음으로 발표도 나기 전에 필요한 서류 등 많은 것들을 준비하고, 탐사대장 로버트 스완 경이 쓴 책을 비롯한 다양한 남극에 관한 책을 사서 읽었습니다. 경쟁을 통해 선발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기다리며 진짜 남극에 가서 어떤 것을 볼 수 있고, 할 수 있을지 찾아보고 탐사대에도 직접 메일을 보내 소개를 했습니다.
그런데 선발이 되지 않았습니다. 행운의 기회는 호주의 E-ideaist 스테판 무쉰이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멈출 수 없었습니다. 남극에 갈 수 있는 기회가 눈 앞까지 왔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자비로라도 참가할 수 있는 지를 탐사대측과 로이드 인증원에 물었습니다. 갈 수 는 있지만 어마어마한 금액이 필요했습니다. 딱 하루 고민했습니다. 결정하고 움직였습니다. 저의 결정은 모금이었습니다. 단순히 남극에 다녀오는 것이 아니라 2041 국제 남극 탐사대에 참여해서 그 곳에 가는 것은 정말 특별한 경험이 될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세상과 나눌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다양한 아이디어를 세상과 나누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통해 열정과 창의를 전달하는 일을 해왔기에 정말 좋은 콘텐츠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믿었습니다. 돌아와서 최소한 열 번 이상 비영리 단체 및 초중고등학교에서 재능기부로 남극체험 이야기를 나누겠다는 약속을 바탕으로 도움을 부탁했습니다.
거절도 물론 있었습니다.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듯 하다가 허탈하게 돌아서야 했을 때도 있었습니다. 한 달도 안되는 짧은 기간 동안 과연 가능 할 지 궁금했지만 남극은 저를 끌어당겼습니다. 부탁하는 많은 글을 써서 보내고, 직접 만나서 설명하고, 전화를 했습니다. 막바지가 되자 조금씩 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고마운 분들이 후원을 해주시겠다고 말씀해 주셨고, 영국문화원에서도 탐사 비용의 일부를 후원해주기로 약속해 주어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상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항공권은 로이드 인증원에서 도움을 주겠다고 손을 내밀어 주셔서 정말 기뻤습니다. 마지막에는 부모님의 도움과 제가 그동안 모았던 거의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해서 남극에 갈 수 있는 돈을 딱 맞게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16명의 후원이 없었더라면 다녀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남극에서 만난 팀원들과 준비했던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모두 놀라워했습니다. 저처럼 개인 모금을 해서 온 경우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관 및 기업을 대표하여 참가했습니다. 지구의 끝에 가는 준비 과정에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3. 남극에 가기 위한 준비
남극에 가는 것은 지금까지 해왔던 여행과 다른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남반구의 따뜻한 시기이긴 하지만 여름에도 남극의 기온은 0도 이하입니다. 날씨와 기온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전문적으로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쓰는 것과 같은 옷과 장비들이 필요했습니다. 탐사대에서 보내준 리스트에 맞춰 체온 유지를 할 수 있도록 겹쳐 입을 수 있는 옷을 준비하고, 등산화와 고어텍스 재킷과 바지 등이 필요했습니다. 아웃도어 용품들은 가격이 상당히 비쌌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빌릴 수 있는 것들은 빌리고, 같은 소재를 사용한 저렴한 브랜드의 제품을 사서 경비를 줄였습니다. 그래도 생각보다 많은 비용이 들어갔습니다. 다녀와서 보니 남극에 한 번 다녀온 장비면 히말라야 산맥도 오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생각보다 날씨가 많이 춥지 않아서 다행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살을 에는 듯한 추위를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견딜 만 했습니다.
남극 탐사를 하는 데 건강 문제가 없다는 담당 의사의 확인이 필요했고, 혹시나 남극에서 사고가 생겼을 경우 우리나라 또는 치료가 가능한 곳까지 옮겨지는 데 필요한 충분한 비용이 보장되는 여행자 보험도 반드시 들어야 했습니다. 국내의 거의 모든 보험회사에 전화를 해서 상담을 해야 했습니다. 남극에 가는 사람을 위한 보험은 따로 없을 뿐더러, 탐사대에서 안전을 위해 요구하는 금액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다행히 외국계 보험사 한 곳과 국내 보험사 한 곳, 두 개의 보험을 함께 들어 해결했습니다. 지난해 가을 무렵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 수술을 해서 걱정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의사 선생님께서 뛰거나 무리하지 않는다면 괜찮을 것이라고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탐사 기간 중 조금 높은 곳에 오르는 프로그램은 있었지만 무리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남극 탐사는 큰 무리 없이 다녀올 수 있는 정도입니다. 뒤에서 설명해 드리겠지만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지뢰 폭발로 무릎 아래를 잃은 미군 장교 한 명과 동계올림픽 종목 루지 선수로 활동하다가 사고로 같은 신체 부위를 잃은 영국 군인 한 명도 참석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거의 모든 남극 탐사 활동에 의족을 사용한 상태로 참여했습니다.
4. 남극과 남극 가는 길
남극의 여름은 생각보다 무시무시하지 않습니다. 겨울에는 최저 영하 80도 가까이 내려가고 강풍이 불며 바다가 얼어서 일반인은 접근조차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겨울에는 남극에 있는 많은 국가의 과학 기지에도 대원 수를 줄인다고 합니다. 일반 탐사 프로그램은 남반구가 따뜻한 시기인 10월부터 3월 까지만 진행할 수 있습니다. 크루즈 선박으로 여행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물어보니 대부분 60대에 가까운 분들이 그 여행 상품을 이용한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많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인 듯 합니다. 세상에 정말 아름다운 곳은 많지만 살면서 꼭 한 번 가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웬만한 마음가짐으로는 가기 쉽지 않은 곳이기는 합니다. 탐사대를 만나러 가는 길은 정말 멀었습니다. 인천공항에서 에미레이트 항공을 이용해서 두바이,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루,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거쳐 남아메리카의 가장 남쪽이자 지구의 최남단에 있는 도시인 우수아이아까지 갔습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도착해서 하루를 숙소에서 자고 다음 날 아침 국내선으로 세시 간 삼십 분을 날아 우수아이아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지구를 옆으로 돌고 아래로 내려와 도착하니 반가운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041 탐사대 스태프들이 현수막을 들고 공항에서 2012년 탐사팀을 맞이해주었습니다. 홈페이지에서 사진과 프로필을 봤던 사람들을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땅끝마을 우수아이아에 이르자 이제 정말 남극에 간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준비되어 있는 승합차로 숙소까지 올라가며 빙하가 산꼭대기에 쌓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탐사대장 로버트 스완의 유튜브 환영 메시지에 배경으로 나왔던 곳 이었습니다. 준비해 온 장비를 점검받고, 2041 팀 자켓과 모자를 받고 사흘 째 되던 날 아침 드디어 항구에 머물고 있는 씨 스피리트(SEA SPIRIT)호에 올랐습니다. 스태프를 포함한 90명 가까운 사람들이 열흘 넘게 머물게 될 숙소이기도 한 곳이었습니다. 배에 오르기 전에 각 나라의 국기와 소속 단체, 후원 깃발을 들고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제가 가져간 현수막이 가장 길고, 제일 많은 후원 관련 로고가 새겨져 있어서 사람들이 놀라워 했습니다. 서둘러 출항 기념 이벤트를 마치고 배에 오르자 2인 1실로 안내를 받았습니다. 해군 영화에 나오는 딱딱한 침대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좋은 작은 호텔 같은 공간이었습니다. 객실마다 화장실이 있고, 커튼을 열면 밖이 환하게 보이는 4층 28호였습니다. 짐을 풀고 갑판에 나와 배가 떠나는 순간을 지켜보았습니다. 이곳 까지 오기 위해 노력한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모두들 환호성을 질렀고, 배는 큰 소리를 울리며 남극으로 떠나는 것을 알렸습니다.
5. 드레이크 해협을 지나 남극으로 가는 길
남아메리카 대륙의 끝에서 남극 대륙까지 이틀이 걸리는 항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전 오리엔테이션에서 이틀 동안 지나가게 될 드레이크 해협에 대한 소개가 있었습니다. 엄청나게 큰 파도가 치고, 바람이 부는 실제 영상을 보고 다들 놀랐고, 배멀미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다행히 남극에 이르는 바닷길은 생각보다 평안했습니다. 가는 길에 쌍무지개도 볼 수 있었고, 아침에 태양이 바다에서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대자연의 에너지를 온몸으로 받는 것 같았습니다. 올해는 정말 운이 좋다고 했습니다. 풍랑이 심하기로 유명한 드레이크 해협이 이렇게 조용한 것은 드문 경우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들리는 배에 익숙하지 않아 배멀미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가는 길은 예고편에 불과했습니다.
악명 높다는 풍랑에 대한 경고는 정말이었습니다. 남극탐사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바닷길은 갈 때와 너무 달랐습니다. 배 안을 제대로 걸어 다닐 수도 없었고, 앉아있다가 의자가 뒤집어 질 정도였습니다. 아침을 먹으러 오는 사람은 반도 되지 않았고, 혹시나 물건이 떨어져 다칠 수도 있으니 잘 놓으라는 지시도 있었습니다. 큰 배가 작은 돛단배 처럼 검은 바다 위에서 흔들리는 데 타고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 시간이 지나가기 만을 바랄 뿐이었습니다. 먼 수평선을 바라보면 나아진다고 해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기도 했습니다. 배멀미는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던 저도 힘들 정도였으니 여성 참가자들이나 배를 태어나서 처음 타보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었습니다.
우수아이아를 떠난 지 이틀이 지나자 놀라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바다에 얼음 덩어리가 떠있었습니다. 그 크기가 점점 커지더니 안개 낀 저 너머로 빙하가 쌓여있는 남극의 섬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기온은 점점 내려가서 따뜻한 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남극에 온 것을 실감했습니다. 배 안 강연장에 모여 구명 조끼를 입는 방법과 조디악이라고 부르는 고무보트에서 떨어졌을 경우 대처하는 방법에 대한 자세한 안전 교육이 있었습니다. 남극에는 배가 정박할 수 있는 항구가 없기 때문에 배 뒤쪽에서 고무보트를 타고 육지로 가는 것이 탐사의 중요한 과정 중의 하나입니다. 조디악을 처음 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수심이 깊은 바다 위를 이동해야 했기에 안전의 중요성에 대해 굉장히 엄격하게 강조했습니다. 조디악을 타고 가다보면 얼굴에 바닷물이 튀고, 바람에 얼굴이 시려서 눈만 내놓고 타야 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그런 순간 ‘아! 이것이 남극 탐사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져갔던 카메라에 바닷물이 들어가 망가질까 움직이는 동안에는 꺼내지도 못했습니다. 미리 방수가 되는 카메라를 준비한 꼼꼼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6. 남극과의 첫 만남, 펭귄 그리고 자연
조디악을 타고 가다 보니 오묘한 푸른 빛을 띠며 바다에 떠있는 빙하를 볼 수 있었습니다. 색깔 뿐만 아니라 그 형태는 마치 누가 조각을 한 것처럼 다양한 모양이었습니다. 마치 스핑크스같이 앉아있는 형태의 사자처럼 생긴 거대한 유빙도 있었습니다. 그 옆에 조디악이 멈췄을 때 카메라 셔터를 계속 누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수십 년, 수백 년이 아니라 인간이 상상밖에 할 수 없는 훨씬 더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 진 빙하가 육지에서 떨어져 나와 바다에 떠다니는 모습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떠다니는 빙하가 푸른 빛을 띠는 이유는 오랜 시간 동안 압축된 눈 결정이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는데, 긴 파장의 붉은 색은 흡수하고 짧은 파장의 푸른색은 반사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빛은 색을 나타내는 일반적인 형용사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파란색과 녹색의 중간 정도인 묘한 색은 보석 빛깔처럼 보였습니다. 서른 시간 비행기를 타고 마흔 시간 배를 타고 오지 않으면 볼 수 없었을 모습에 살면서 이런 기회를 얻었고, 현실로 만들어 냈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떠다니는 빙하의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한 후 ‘우와' 소리를 내도록 만들었던 것은 펭귄이었습니다. 어릴 적 동물원에서 본 적이 있고,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본 애니메이션 ‘해피 피트’에도 정말 귀여운 펭귄을 보았습니다. 육지에 올라 가까이에서 본 펭귄은 정말 귀여웠습니다. 여러 마리가 같이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뒤뚱뒤뚱 걷다가 물속으로 뛰어드는 모습을 보며 ‘이 곳이 정말 대자연이구나’ 싶었습니다. 아직 어린 펭귄은 털이 보송보송난 상태로 가만히 어딘가를 보며 서있었습니다. 다큐멘터리 ‘남극의 눈물'에서 어미 펭귄이 새끼 펭귄을 먹이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어 먹을 것을 구해오는 것을 보았던 기억이 났습니다. 처음 본 펭귄은 눈 주위가 하얀 젠투 펭귄이었습니다. 젠투 펭귄은 최근 개봉한 짐 캐리 주연의 영화 ‘파퍼씨네 펭귄'에도 나온 종입니다. 아쉽게도 황제 펭귄은 탐사기간 중에 볼 수 없었습니다.
남극에서 평화롭고, 아름다운 모습만 본 것은 아닙니다. 자연과 야생은 뗄 수 없는 단어입니다. 야생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올릴 수 있는 모습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펭귄을 잡아먹는 도둑 갈매기가 이미 땅바닥에 쓰러진 펭귄을 부리로 계속해서 쪼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자이언트 패트롤이라는 큰 새가 펭귄 무리가 있는 곳을 덮치려고 하자 우르르 몰려 피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조디악을 타고 배로 돌아가는 길에는 펭귄을 물고 위아래로 패대기를 치는 바다표범의 모습을 보고 같이 탔던 사람들 모두가 깜짝 놀랐습니다. 한 펭귄은 바다표범에게 그렇게 물렸다가 살아 남았는지 배 부위에 핏자국이 선명한 채로 바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누가 봐도 오래 살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 옆으로 펭귄들이 무리를 지어 지나가는 모습을 보며 어찌 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교과서에 있던 먹이 사슬이 떠올랐습니다. 잔인하지만 자연스러운 것임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지구에 사는 생명체들은 그렇게 살아남으며 수 만 년 동안 종족을 이어왔기 때문입니다.
7. 지구의 끝에서 함께 한 사람들
남극에서 다양한 활동을 함께 했던 좋은 사람들 덕분에 이번 여정은 더욱 오래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22개국에서 온 72명 중 정작 아르헨티나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미국 등 유럽과 호주, 미국 등에서 많은 사람이 왔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아랍 에미레이트, 오만,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에서도 열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참가했으며 중국과 인도에서도 모두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왔습니다. 이번 탐사를 앞두고 어떤 사람들이 오는 지 프로필을 보면서 직접 만나게 될 날을 기다렸습니다. 남극의 펭귄, 빙하도 꼭 보고 싶었지만 국제남극탐사에 참가하고자 이 먼 곳까지 오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 어떤 만남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 지가 더욱 궁금했습니다.
우수아이아에서 처음 만나 가장 인상 깊었던 참가자는 미육군 장교인 카메론이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지뢰 사고로 왼쪽 무릎 아래를 잃어 의족을 차고 이번 탐사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본격적인 남극 탐사에 들어가기 앞서 올랐던 산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올랐고, 남극에 가는 동안 갑판에서 다른 참가자들을 이끌고 체력 단련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른 참가자들에게도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으며, 미국으로 돌아간 지금은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힘을 북돋는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곧 제대한다고 했는데, 앞으로 그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 지 궁금합니다.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계속 소식을 주고 받을 수 있어 이번 2012 탐사 참가자들과 오래도록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극에 다녀온 것으로 탐사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특별한 경험을 바탕으로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함께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이 기대됩니다.
중동에서 온 참가자들은 배 안에서도 머리를 가리는 종교적 전통을 따르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배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 중 고기는 이슬람 율법인 할랄을 따른 것이 아니어서 채식을 할 수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이번 탐사에 참여한 사우디 아라비아 여성 사하르씨는 그 나라에서 최초로 남극에 간 사람으로 이미 출발 전부터 잡지 및 여러 언론에 보도된 것을 직접 보여 주었습니다. 이슬람를 믿는 국가 중에서도 굉장히 보수적인 사우디 아라비아 사람이지만 두바이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남극에서 돌아와 방송 영상으로 본 전문적인 모습은 또 달랐습니다. 아랍 에미레이트의 아부다비 국립 은행에서도 다섯 명이나 되는 여성 참가자가 탐사에 참가했습니다. 참가자들과 활발하게 이야기 나누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탐사 기간 중 식사 시간 등에 서로의 종교와 문화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장면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인도에서 온 참가자들은 유행하는 인도 음악을 틀고 춤을 추며 즐거운 분위기를 이끌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나라 사람들의 문화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밥을 먹으며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8. 남극을 온몸으로 느끼기
남극 땅에서 하늘을 보며 잠을 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요? 세종 기지를 비롯한 여러 국가의 남극 과학 기지에 머물고 있는 대원들 빼고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탐사 기간 중 딱 하루는 배가 아닌 남극 땅에서 침낭을 깔고 잠을 잤습니다. 눈으로 1미터 정도 되는 벽을 쌓아서 바람을 막고, 바닥을 평평하게 다진 후 침낭을 깔고 나란히 누웠습니다. 쉽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어두운 남극 하늘을 바라보며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아직 잠이 들지 않은 동료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남극 땅의 기운이 온몸으로 전해지기를 바라며 잠들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밤새 약간의 비가 내려 침낭은 축축했고, 옆에 추워서 벌벌 떨고 있는 동료를 보니 저도 추웠습니다. 서로 캠핑을 무사히 해낸 것을 축하하고 격려했습니다. 이번 남극 탐사의 하이라이트는 남극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캠핑이었습니다.
9. 자연스러운 결정 ‘남극에 간다’
2041 국제남극탐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결정했습니다. 남극에 가기로 했습니다. 살아가다가 운명처럼 받아들이게 되는 때가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번이 바로 그 때였습니다. 끌어당기는 힘이 강한 남극은 저를 놓지 않았고, 저는 남극에 갈 수 있었습니다. 사람의 의지는 그 무엇보다 대단하다고 말을 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의지의 문제를 넘어선 무언가라고 느꼈습니다. 짧은 기간 동안 남극에 갈 준비를 하며 이토록 온 힘을 쏟았던 적이 없었습니다. 돌이켜보니 저는 어느새 남극에 다녀왔습니다. 적어도 그곳에서는 사람은 자연의 주인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을 신경도 쓰지 않으며 유유히 걸어 다니는 펭귄이 주인이고, 보든 안보든 낮은 소리 내며 천천히 걷는 바다표범이 주인이었습니다. 쇠로 만든 큰 배가 검은 바다 위에서 종이배처럼 좌우로 무섭게 흔들릴 때 저는 자연에 비해 한없이 약한 존재였습니다. 자연이 허락해야 들를 수 있는 그 곳에서 겸손함을 배웠습니다. 자연과 자연스러운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릴 적 과학 실험을 할 때 쇠못을 자석에 일정시간 붙여 놓으면 끌어당기는 힘이 못에 전해져 다른 쇠가 달라붙던 기억이 납니다. 끌어당기는 힘이 가장 센 곳인 남극에서 저는 어떤 힘을 갖고 왔을지 궁금합니다. 그 힘은 앞으로 살아가는 데 어떤 영향을 줄 지도 궁금합니다. 그 중 하나는 이야기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피부로 느낀 것들을 말로 전할 수 있는 때가 많아 질 것으로 믿습니다. 더욱 많은 사람과 이어질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날 것입니다. 그 기회는 새로운 경험으로 이어질 것이며, 그 경험 속에서 만나는 사람과 어떤 이야기를 또 만들어 나가게 될 지 궁금합니다. 2012년 남극 탐사는 끝났습니다. 그렇지만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내리며 느꼈습니다. 여행의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10. 남극을 가고자 하는 분들께
이 글을 보고 있는 분들은 남극에 갈 수 있는 가능성이 누구보다 높습니다. 어떻게 하면 갈 수 있는 지 알려드릴 수 있고 준비를 시작하신다면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사는 동안 꼭 한 번은 가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입니다. 그 곳에 이르는 과정은 그동안 제 머릿속에 있던 지리적 한계,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남극을 다녀오기 전의 ‘나'와 남극을 다녀온 후의 ‘나'는 다릅니다. 바다 위를 지나고, 얼음 땅을 걸었던 시간은 지나간 것이 아니라 생생하게 남았습니다. 눈 감으면 생각나는 그 순간은 살아가는 힘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한계에 맞닥뜨릴 때 분명 떠올릴 것입니다. 이제 여행을 시작했기에 경험을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함께 하자고 손을 내밀어 드릴 수는 있습니다. 남극에 다녀오는 일도 그랬습니다. 절대로 혼자 갈 수 없는 곳입니다. 함께 하는 사람을 믿고, 서로 의지해야 이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말을 건네고, 손을 잡아주고, 함께해야 갈 수 있음을 이해하셨다면 도전해보십시오.
제가 찍은 펭귄입니다. 참 귀엽죠?
* 자세한 이야기를 담은 후기도 곧 정리해서 사진, 동영상과 함께 올리겠습니다. 남극 또는 탐사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메일 또는 댓글로 연락주시면 알려드리겠습니다. 특별한 이야기를 가지고 지구의 끝에서 돌아왔습니다. 남극에 이르는 도전 과정과 생생한 남극 이야기가 궁금하신 기관 및 기업에는 직접 찾아가 이야기를 전해드릴 수 있습니다. 남극 이야기 뿐만 아니라 '아(ah)!하고 놀라고 아하(aha)!하고 이해하는 Creative Thinking에 대해서 강연을 함께 진행할 수 있습니다. 언제든 연락 부탁드립니다.
사정이 여의치 않은 어린이, 청년 관련 비영리 기관에 계시다면 재능기부 형태로 강연도 가능합니다. 2012년 최소 10회 재능기부로 강연을 하고자 합니다.
4월 말에 공간을 빌려 도움을 주신 분들과 남극 이야기에 관심 많은 SNS 친구분들을 모시고 남극여행후기를 들려드리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블로그와 페이스북을 통해 자세한 계획은 곧 알려드리겠습니다. 2013년 국제남극탐사 2041에 탐사대원으로 참가하고자 하시는 분이 있다면 꼭 연락바랍니다. 함께 멋진 도전을 이뤄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남극 탐사를 앞두고 어려움에 맞닥뜨려 도움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탄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난 1월부터 2월 17일 오늘까지 국제 남극 탐사대 2041 참가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영국문화원(British Council)과 영국계 기관 로이드 인증원(LRQA)이 주관하는 친환경 기업가를 육성하는 E-idea에 선발되어 지난해 9월 부터 활동해왔습니다. 활동하던 중에 영국인 남극 탐험가 Robert Swan(OBE)경이 이끄는 2041 국제남극탐사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남극 환경보호와 지속가능성에 대한 교육이 진행되는 탐사프로그램입니다. 영국문화원과 영국 로이드 인증원 및 지인들의 후원으로 2월 27일부터 3월 12일 까지 열리는 국제 남극 탐사에 맞춰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두 영국 기관이 도움을 주어 19,000달러의 탐사 비용을 송금하고, 담당 의사의 건강 검진을 받고, 여행자 보험도 탐사대에서 요구사항대로 준비했습니다. 아르헨티나 우슈아이아로 가는 항공권 발권도 마무리하고 떠날 날을 학수고대 하고 있었습니다.
남극 관련 정보를 검색하던 중 외교통상부의 인가가 있어야 남극지역에 방문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소 50일 전에 사전 신청을 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남극 탐사참여가 확정된 때가 1월 중순인 16일이었고, 약 한 달 전입니다. 그동안 남극에 관련된 기사와 책을 찾아보았지만 관련된 내용을 알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이란어를 전공하고 터키 및 이란을 방문한 적이 있어 아프가니스탄과 소말리아 같은 여행 제한구역에 대해서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극방문 허가제도'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없었고, 알게 된 후 어찌해야 할지 방도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영국, 미국, 호주, 중국 등 15개 나라에서 오는 70여 명의 참가하는 이번 탐사대로부터도 각 나라 외교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듣지 못했습니다. 2003년 부터 매년 한 차례 남극탐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2041 탐사대기에 남극에 방문하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개별 여행이 아니라 규칙에 맞춰 일정에 따라 진행되는 공신력 있는 탐사팀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우슈아이아에서 남극대륙으로 떠나는 3월 1일 전에 남극 방문 허가에 필요한 기간을 조금 앞당겨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이번에 참여하는 국제남극탐사대 '2041'은 마드리드 조약이 만료되는 해인 2041년 이전까지 더욱 노력해서 남극대륙을 개발하지 않고 야생의 상태로 보호하자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남극 환경 보호활동과 탐험정신을 인정받은 탐사대장 Robert Swan(OBE)경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으로 부터 훈장을 받은 바 있습니다. 탐사대에 참여하는 것은 매우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양한 국가에서 온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의 지속가능한 발전, 녹색성장에 대해 알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리고 돌아와 초, 중,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남극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강연 활동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현재, 세심하게 알아보지 못했기에 남극 탐사에 참여하는 데 어려움이 생긴 상황입니다. 외교통상부 장관님의 허가 없이는 남극으로 향하는 배에 오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법을 존중하는 국민으로서 남극보호조약과 그에 관한 법률은 준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뒤늦게 발견했고, 탐사 시작일 까지 2주일 밖에 남지 않았지만 외교통상부의 배려에 희망을 걸고 탄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제 주변의 그 누구도 남극에 다녀온 사람이 없습니다. 미지의 영역을 알아간다는 마음으로 이번 국제남극탐사 프로그램에 참여하고자 온힘을 다했습니다. 공공 업무의 특성상 절차와 과정이 있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인 제가 처한 상황을 이해해주시고, 배려해주신다면 남극으로의 출발에 허가를 내주시어 안전히 다녀올 수 있도록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남극을 보호하기 위해 외교통상부, 환경부 등에서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점을 세상에 더욱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
고맙습니다.
2012년 2월 17일 대한민국 국민 염지홍 드림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하시겠지요? 남극 탐사를 준비하면서 주변의 적은 수의 친구들에게만 알렸습니다. 탐사에 참여하는 것이 까다롭고, 많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주변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도움을 요청하며 준비를 했습니다. 반드시 갈 것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시작은 했지만, 100% 가게 될 것으로 예상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말을 아꼈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준비한 끝에 탐사비용 및 항공권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말씀드릴 수 있게 되었지만, 이러한 일이 생길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남극탐사에 관한 정보를 구글과 네이버에 검색해서 찾아보고, 관련된 책을 읽으며 준비를 했습니다. 1900년대 영국의 남극 탐험가들의 이야기와 남극을 향한 각국의 노력에 관한 책들입니다. 과연 어떤 곳일지 궁금했습니다. 구글과 네이버에 '남극 탐사(네이버 결과)(구글 결과)'라는 검색어를 넣고 찾아보면 남극방문허가에 대한 것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네이트에서 '남극(네이트 결과)'에서 검색을 했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아래 그림처럼 허가신청요령, 허가가 필요한 이유, 여행시 유의할 점에 대한 정보가 있었습니다. '허가라니...'저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검색하면서 왜 못봤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국인 Robert Swan경이 대장이고 미국에 기반을 둔 2041탐사대에서도 관련 허가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아르헨티나에 입국하는 비자만 체크하라고 했습니다. 저에게 이번 탐사기회를 알려주었고, 일부 후원을 한 영국문화원과 LRQA에서도 몰랐던 사실입니다.
"남극에 가십니까?" 허가가 필요합니다.
남극활동 및 환경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남위 60도 이남의 지역으로의 여행 등 남극활동을 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외교통상부 장관의 허가를 받으셔야 합니다.
라고 쓰여있었습니다. "남극에 가십니까?"라는 질문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요? 이번 만큼은 저에게 외치는 말로 들렸습니다. '남극에 가십니까? 남극에 가십니까? 남극에 가십니까?'가 계속 귓속을 맴돌았습니다. '정말 가려고 하는 것입니까? 그런데 왜 이제야 이곳에 방문한 것입니까?'로 질문하는 것 같았습니다.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출국까지 일주일이 넘는 날이 남아있으니까 빨리 허가를 받아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관련 절차를 살펴보던 중에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2장 허가와 신고
제3조 (남극활동의 허가신청) 법 제4조제1항의 규정에 의한 허가 및 제4조제2항 단서의 규정에 의한 변경허가를 받고자 하는 자는 남극활동 개시 예정일 또는 변경 예정일의 60일 전까지 외교통상부령이 정하는 허가신청서 또는 변경허가신청서에 법 제5조 각 호의 서류를 첨부하여 외교통상부장관에게 제출하여야 한다. 다만, 법 제8조 제1항 단서의 규정에 의하여 외교통상부장관이 환경부장관 및 국토해양부장관과 협의하지 아니하여도 되는 남극활동을 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남극활동 개시 예정일의 30일 전까지 허가신청서를 제출할 수 있다. <개정 2008.2.29>"
법령에는 60일 전까지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래에 협의하지 않아도 되는 교육 및 홍보 목적의 남극활동을 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30일 전까지 허가신청서를 제출할 수 있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30일에 해당되는 탐사라고 생각했지만 외교통상부에서 어떻게 판단할 지 짐작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출국까지는 열흘 남극으로 탐사선이 떠나는 날인 3월 1일까지 보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도대체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 되어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누우면 바로 잠드는 저는 그 날 밤을 꼬박새며 관련 법령을 읽고, 외국의 남극 허가 관련 법규를 찾아보았습니다.
허가를 받기위해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고, 위의 탄원서를 쓰고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날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고, 준비해간 서류를 드렸습니다. 그렇지만 60일 규정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허가가 어려울 수 있다고 했습니다. 2041 국제남극탐사대는 2003년 부터 매년 한 차례 전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탐사활동을 벌여온 단체입니다. 탐사활동 내용, 환경 보호를 위한 노력 등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활동에 대한 일정과 탐사의 취지에 대한 충분한 자료를 첨부해서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받은 전화로는 아무래도 허가가 어려울 것 같다는 답변이었습니다.
정말 방법이 없는 것일까요?
처음에는 '왜 이것을 지금에야 발견했을까!'싶었습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늦게라도 발견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정보를 발견하지 못하고 남극에 다녀왔다면 남극환경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법령을 위반하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041 국제남극탐사대는'환경보호에 관한 남극조약 의정서(마드리드 조약)'을 지키자는 메시지를 알리고자 조직되었습니다. 그러한 조약을 지키고자하는 활동에 참여하면서 국내 법령을 어길 수는 없습니다. 다녀와서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남극의 이야기를 전해주어야 하는데 법을 어기며 다녀왔다고 설명할 수 없습니다. 시간은 돌이킬 수 없기에, 지금 비록 이 시간이 견디기 힘들지만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2012 국제남극탐사를 포기하겠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절차를 밟고, 설득을 하고, 세상에 알려 현재 상황에 대한 외교통상부와 세상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남극으로 배가 떠나기까지 열흘, 인천공항에서 비행기가 떠나기 닷새가 남았지만 한 번 해보겠습니다.
법령에 나온 기간인 60일보다 늦게 외교통상부의 문을 두드린 것은 저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남극이라는 특별한 지역을 방문하는 데, 충분한 검토기간이 필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급히 처리하게 되어 발생하는 행정상의 실수를 줄이고, 혹시나 남극 방문하는 사람이 일정이 바뀔 수도 있음을 고려한 것일거라고 봅니다. 이번 2041 국제남극탐사대의 경우 2003년 부터 매년 한 차례 탐사팀을 조직해서 같은 탐사 프로그램을 실행해 왔습니다. 올해는 열번 째가 되는 해로 그동안 20여 개국에서 매년 50-60명씩 700명 이상이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코카콜라, KPMG, BP와 같은 글로벌 회사가 사회공헌 형태로 공식 후원을 하고 있는 탐사프로그램입니다. 탐험대장인 로버트 스완 경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남극과 북극점을 걸어서 횡단하고, 남극의 폐기물을 치우는 공로를 인정받아 공식 훈장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처럼 믿을 수 있는 탐사대의 정보를 충분히 제공했고, 외교통상부의 전문적인 확인 수단을 활용하면 해당 탐사대의 신뢰성에 대해서 손쉽게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남극이 위험하지는 않느냐, 엄청나게 춥지는 않느냐는 질문을 주변에서 받았습니다. 오히려 남반구가 여름인 지금은 영상의 온도일 때가 많고,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기상변동으로 인한 위험은 존재하지만 전쟁이나 물리적인 분쟁국가 또는 테러위험 국가에 가는 것보다는 훨씬 안전한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위험한 국가에 가는 것이었으면 아마 미리 외교통상부 홈페이지(http://www.mofat.go.kr) 또는 해외안전여행(http://www.0404.go.kr/)사이트에 가서 미리 확인을 했을 것입니다. 영사콜센터에 대해서는 몇 차례 여행을 다녀오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에서 배를 타고 출발해서 어느 나라로 입국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도 주인이 아닌 영토에 도착하는 것이기에 특정한 절차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을 못했습니다. 전 세계 모든 나라에는 국경이 있고, 내 땅과 남의 땅이 분명히 나누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해왔던 것이 오히려 낯설게 생각되었습니다.
혼자서만 고민하면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1월 부터 수십통의 이메일을 주고 받고, 컨퍼런스 콜로 이번 남극탐사에 대해 의논을 했던 영국문화원과 LRQA 대표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이번 2041 국제남극탐사는 오히려 남극 환경 보호와 기후변화에 대한 메시지를 세상에 알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내는 것임을 공신력있는 기관의 입을 빌어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금요일 오전에 [Emergency]라는 제목을 달아 보낸 메일에 바로 해당 기관 대표가 흔쾌히 추천과 협조 요청을 위한 서신을 작성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월요일에는 주한영국문화원 롤란드 데이비스씨를 만나 '꼭 갈 수 있을테니 걱정말라'는 격려의 말과 추천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급히 외교통상부 담당자에게 전달을 했습니다. 이러한 외교적 노력까지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영국문화원과의 프로젝트를 계기로 알게 되었고, 기후변화에 대한 영국의 관심과 1900년대 초 남극 탐험을 최초로 시작한 국가가 영국이기에 그러한 도전의 문화가 지속되어 오고 있음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번 남극방문허가에 관한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게 된다면 예정대로 남극에 방문해서 평생에 단 한 번일지 모르는 소중한 경험을 하고 돌아올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저 염지홍 개인에게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한국에 돌아와서 더욱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 사진, 영상으로 남극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을 통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도전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 몇 명의 학생들은 세종과학기지, 장보고기지에서 연구를 할 과학자로 성장할 것입니다. 지난 해 용인 수지고등학교에서 두 차례 강연을 했습니다. 강연을 들었던 똑똑한 한 친구가 자신의 목표가 세종기지에서 연구하는 과학자가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남극에 먼저 잘 다녀와서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후원해 준 기관, 친구들, 부모님 그리고 잘 다녀오기를 응원해주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올 지 기대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입니다.
부디 이번 2041 국제남극탐사에 참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슈아이아에서 탐사대가 탄 배를 떠나보내며 혼자 부두에 서있게 된다면 외로울 것입니다. 15개 나라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과 특별한 경험을 하며 함께 배우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 대한 관심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분명 제 삶의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Passion Designer로서 그 경험과 열정을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에 전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으로 믿습니다.
떠나는 마지막까지 응원 부탁드리고, 앞으로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P.S. 탐사대장 로버트 스완경의 메시지를 마지막에 담습니다. 다음주면 이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 나눌 수 있겠군요! 설렙니다.
남극탐사를 참여하게 된 계기와 준비과정을 자세히 설명해드리는 것은 또 다른 사람이 남극에 갈 수 있는 길을 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페이스북에 갑자기 남극에 간다고 짧은 글을 올려서 많은 분들이 놀라셨을텐데요. 탐사를 11일 앞둔 오늘부터 어떤 계기로 참여하게 되었는 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 지, 왜 가려고 하는 지, 가서 어떤 활동을 하게 되는 지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언젠가 남극에 가고자 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제가 참가하는 국제남극탐사대 2041에 대한 설명을 먼저 드리겠습니다.
탐사대 이름은 ‘2041 IAE(International Antarctic Expedition)’ 입니다. 영국인 극지 탐험가 Robert Swan 경이 탐사를 이끌고 있습니다. 남극과 북극 모두를 동력없이 걸어서 도달한 첫 번째 사람입니다. 기후 변화와 남극 환경 파괴를 막고자 앞장서고 있으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신재생 에너지의 필요성에 대해 알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1992년 UN 리우 환경 회의 연사로서 청년들의 지구, 지역 환경 보호에 대한 역할에 대해 강연했습니다.1995년에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대영 제국 훈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름 뒤에는 OBE(Order of the British Empire)이 붙습니다. 탐사대 이름 ‘ 2041’은 자원 탐사 및 개발을 중단하기로 1991년 결의한 남극 보호 조약이 만료되는 해를 의미합니다. 2041년 이후에 국가간 합의가 되지 않으면 영유권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으며, 남극 대륙을 파헤쳐 자원을 개발하려는 시도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탐험기간에는 ‘Education on the Edge’ 라는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남극 환경 보호의 필요성을 비롯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리더십에 대해 전문가들의 강연이 이어집니다. 2 월 27일부터 3월 12일까지 아르헨티나 최남단 도시 우슈아이아에서 출발하며 태양광, 풍력 에너지를 사용한 E-base에 머물며 남극을 탐사하는 여정입니다. 평균 20개국에서 선발된 60명의 탐사 대원이 참여합니다. 2003년 부터 공식적인 탐사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으며, 이번 2012년 탐사에는 영국, 미국, 캐나다, 중국, 홍콩, 호주, 아랍에미레이트의 두바이와 아부다비, 오만, 몰디브,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인도에서 73명의 참가자가 우슈아이아로 모입니다.
오른쪽 위에 보시면 현재 영상 2도로 표시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남극이라고 하면 눈보라가 몰아치고, 엄청나게 추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오히려 서울보다 더 따뜻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겨울이지만 이번에 거쳐가는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남반구는 여름입니다. 극지이기 때문에 날씨나, 온도가 급격히 변할 수 는 있다고 합니다. 극점에 가까워지면 기온은 더 내려가겠지요. 최근 MBC에서 방송되고 있는 다큐멘터리 '남극의 눈물'을 보셨나요? 겨울이 되면 남극의 최저 기온은 평균 영하 50도 정도로 내려가고, 영하 89도에 이른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겨울이 다가오면 남극 기지에 머무는 인원을 줄이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2041 탐사팀도 매년 이맘 때 남극탐사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서울에서 겪어보지 못한 추위와 눈보라를 경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아주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안전하게 다녀오는 것이 우선이겠지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기온은 현재 섭씨 32도이고, 이번주 목요일에는 37도까지 올라간다고 합니다. 오늘은 입춘이 지났지만 날씨가 부쩍 추워져서 장갑을 끼고 다녀야 할 정도였습니다. 다음주 토요일에 서울에서 출발할 때는 오늘보다 따뜻하겠지만 그 때 까지도 추울텐데,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내리면 정말 덥겠군요. 서울과 낮기온이 30도 이상 차이납니다. 그럼에도 아르헨티나 남쪽 끝의 우슈아이아는 낮기온이 섭씨 7-8도 정도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세 시간을 날아가는 거리이기 때문에 온도차이가 그렇게 많이 날 수 있나봅니다. 인천-두바이-부에노스 아이레스-우슈아이아-남극에 이르는 여정에서 맞게될 각 지역의 날씨와 기온은 특별한 경험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겨울옷과 여름옷이 모두 필요한 여행이 되겠네요.
다음 글에는 어떤 계기로 참여하게 되었고, 어떻게 준비해왔는 지에 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책을 샀습니다. 올해는 헌책방을 많이 다녔습니다. 신촌, 동교동 일대에 있는 헌책방을 특히 자주 갔습니다. 오늘 갔던 정은서점, 새로생긴 도토리 책방, 공씨책방, 숨어있는 책, 북오프 그리고 한국외대 옆에 있는 신고서점에 갔었네요. 아! 이대앞의 유빈이네 책방도 처음 가봤습니다. 한 번 누군가의 손을 거쳐 다시 책장으로 나온 책들은 대형 서점에 있는 그것들과 느낌이 다릅니다. 가끔 저자의 서명이 쓰여있기도 하고, 연필로 수줍게 밑줄이 그어져 있기도 합니다. 일단 제 손에 들어오면 만년필로 줄을 쫙쫙 그어가며 읽습니다. 제 책이라는 정체성이 강해지죠. 저는 책을 헌책방에 팔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에 제 책장에서 팔려나갈 일은 없습니다. 친구에게 빌려주거나, 그냥 주는 경우는 물론 많죠. 하지만 그런 책들은 제 손을 떠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읽은 친구의 머릿속에 살면서 저에게 말을 걸죠. (인셉션이 생각나는군요) 사실 많은 책을 그냥 주듯 빌려주는 비밀중의 하나입니다. : )
오늘은 또다시 끌리는 대로 책을 골랐습니다. 버스 환승이 가능한 25분안에 골라 나오려고 알람까지 20분에 맞추고 들어갔습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깊이 빠져들고, 어느새 알람이 울리고 그냥 버스타기는 포기하고 책구경에 몰입합니다. 요새 제게 필요한 내용들과 요즘 고민하는 내용에 관련된 책들을 골랐습니다.
첫 번째, [괴테, 청춘에게 답하다] 데키나 오사무 편저, 예인 인생에 대한 괴테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모아놓은 책입니다. 가끔 펼쳐봐야겠어요.
두 번째, [봄여름가을겨울, 서늘하고 매혹적인 명품 한시와 옛 시인 마음 읽기] 김종서 지음, 김영사 제목과 같습니다. 각 계절에 의 분위기를 잘 표현한 옛 시들을 쉽게 설명하고, 감상을 담은 책입니다. 버스타고 오면서 읽었는데 봄을 기다리게 되는 좋은 시들이 많이 담겨있더군요.
"눈길마다 붉은 꽃들 발걸음을 붙드는데 막대 짚고 산보하다 시내 저편 이르렀네. 지난밤 온 한 자락 비, 그 누가 알았으랴? 꽃 필 만큼 적셔주고 땅은 질지 않게 할 줄" -김매순 <시냇가에 나가 한 구를 얻다>
봄비가 곧 오겠지요?
셋 째, [닥치고 정치] 김어준 지음, 푸른숲 왜 많은 사람들이 그와 그의 방송에 열광할까? 궁금했습니다. 읽어보고 판단해봐야겠습니다.
넷 째, [마르지 않는 창의성] 에릭 메이슬 지음, 도솔 창의성은 제 삶의 화두입니다. 무엇이 새로운 것을 만들고, 연결하게 하는 힘인지 궁금합니다. Ah!하고 aHa!하도록 만들 수 있는 힘은 어떤 것인지 공부해보겠습니다. 특히 초중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창의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다섯 째, [곡선이 이긴다] 유영만, 고두현 지음, 리더스북 한양대 교육공학과 유영만 교수님 사무실을 지난해 쯤 방문했을 때, 이 책을 쓰고 계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곡선'에 대한 글을 쓰신다기에 궁금했습니다. 우직하고 강직하고 꼿꼿한 것도 좋지만 부드럽고, 유연하고, 선이 고운 행동과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지요. 아직은 생각도 뻣뻣하고, 몸도 뻣뻣한 저는 어떻게 바뀌어 갈 수 있을까요?
여섯 째, [큐레이션 - 정보 과잉 시대의 돌파구] 스티븐 로젠바움 지음, 명진출판 이제는 정보를 얻는 것보다, 지우는 것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고 합니다. 매일매일 오는 메일이 이미 열 통이 넘습니다. 편지라는 본래의 뜻보다 그냥 툭 던지는 쪽지나 광고에 가깝죠, 메일이라는 형식을 빌어서 보낼 뿐. 고르고, 지우고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힘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입니다. 수많은 콘텐츠를 잘 고를 수 있는 능력은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겠지요?
일곱 째, [아날로그로 살아보기- 인터넷과 스마트폰 없이 오프라인으로 지낸 40일] 크리스토프 코흐 지음. 율리시즈 요새 제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물론 지금도 컴퓨터를 활용해서 글을 남기고 있지만, 점점 네트워크와의 접속의 시간을 줄이려고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고 있습니다. 카카오톡은 지운지 1주일이 넘었고, 대부분의 어플리케이션도 지웠습니다. 옛날 폰으로 돌아갈까 고민중이기도 하고요. 아이폰 사용한 지 이제 딱 2년 되었습니다. 더 읽고, 더 쓰고, 더 듣는 것에 집중하려면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SNS라는 소통의 수단도 중요하기에 맺고, 끊는 것을 잘 해야겠지요.
여덟 째, [지구, 그 후 - 환경과 세계 경제를 되살릴 그린에너지 혁명이 몰려온다] 프레드 크럽, 미리암 혼 지음. 에이지21 아! 에이지21에서 나온 책이군요. 이 출판사는 지속가능성, 사회적 기업 등에 대한 좋은 책을 많이 내는 곳입니다. 러브앤프리라는 유명한 책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일본인이 대표인 출판사인데요. 대안적인 가치에 관심이 많은 회사입니다. 곧 한 번 방문해야겠습니다. 지난 해부터 부쩍 관심을 많이 갖게된 지속가능성, 환경문제 등에 대한 지식을 쌓기 위해 구입했습니다. 알아야 더욱 쉽게 설명할 수 있겠지요? 제 삶의 방식도 더욱 지속가능하게 바꿀 수 있을 것이고요. 올해 열리는 리우환경회의에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아홉 째, [대기오염, 그 죽음의 그림자] 데브라 데이비스 지음. 에코의 서재 제목이 무시무시합니다. 그렇지만 내용이 전부 호러소설 같은 것은 아닙니다. 살짝 살펴보니 환경오염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쓰여있습니다. 아직 환경오염으로 인한 피해를 피부로 느낄 정도는 아닙니다. 저를 비롯한 사람들은 환경오염으로 인한 인간과 지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심각성에 대해 깊이 공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피부로 느낄 정도가 된다면 더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들어선 것이겠지요? 그 전에 생각을 모으고, 공감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이미 방법은 많고 다들 알고 있습니다. 무관심이 가장 큰 적이지요.
책 제목이 저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같습니다. 이 질문들의 대답을 내년부터가 아니라 지금부터 찾아나간다면 내년 이맘 때는 제 이름의 책 한권이 맨 위에 놓일 수 있지 않을까요? 기대해봅니다. 저에게.
지난 3년 동안 매주 토요일 아침에 모였던 독서모임에 오늘도 다녀왔습니다. 다음주 토요일이면 4년차에 접어듭니다. 또 어떤 분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 지 궁금합니다. 2012년이 기대됩니다. 올해를 큰 후회없이 보낸 것에 감사하며, 읽어주시는 여러분께 고맙습니다.
Passion Designer 염지홍, 용인 수지고등학교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왔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글쓰기' 버튼을 눌렀습니다. 너무 '오랜만'이다보니 설레기도 하고 낯섭니다. 생각과 열정을 공유하고자 만든 이 공간을 더욱 자주 찾고자 합니다. 다시 이곳에 글을 쓸 수 있게 용기를 준 학생들이 있습니다. 지난주 그리고 어제 또 만났던 용인 수지고등학교 학생들입니다. 제 이야기를 한 시간 넘게 잘 들어주고, 명함을 받고 좋아하는 모습에 저도 기뻤습니다. 앞으로 또 만나자는 제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주고, 손수 명함을 즉석에서 만들어서 건네주는 친구의 모습이 멋졌습니다.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항상 고민이 많았는데, 이제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 이야기로 사람 사이를 잇는 것입니다. 한 명 한 명 눈을 보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눈빛에서 힘을 얻습니다. 지금까지 만났던 분들이 생각납니다. 귀를 기울여 주시고, 따뜻한 눈빛을 보내주셨기 때문에 고마운 마음으로 오늘을 맞았습니다.
잠시 멈추었던 이곳의 소통을 이어가겠습니다. Passion Letter로 하루하루 열정을 전하던 즐거움도 되찾고자 합니다.
일일이 인사드리지 못하지만 찾아와주신 분들께 고맙습니다.
염지홍 드림
P.S. 수지고 학생들을 만난 이야기는 추신으로 달아야 할 것 같습니다. : )
두 번째 강연을 했던 12월 26일에는 끝나고 몇몇 학생들이 교실로 돌아가지 않아 삼십 분 넘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누군가 길에 버린 옷걸이 뭉치를 가져가서 하나씩 독서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강연중에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누고, 학생들의 꿈이 무엇인지도 물어보았습니다. 역시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지요. 80명 전체와 찍을 수는 없었지만 남은 친구들의 얼굴을 기억하고자 사진을 남겼습니다. 서로의 에너지를 느꼈겠지요.
가운데 제가 가지고 간 형광반사조끼를 들고 있는 친구가 바로 물음표군입니다. 이번 강연에서는 시작하며 염지홍이라는 나의 이름과 Passion Designer라는 내가 지은 이름 즉, 퍼스널 브랜딩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그릴고 호기심, 질문의 힘, 물음표에 대한 생각도 이야기 했습니다. 아마 이번 만남 때문에 계속 그 이야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한 친구가 다가와 자기 이름은 물음표라고 했습니다. 저도 어리둥절해서 물어보니 그 물음표의 의미는 물(物)질, 즉 세속적인 가치를 멀리하며 덮어두고(蔭) 살아가는 표(表)상이 되겠노라 지었다고 했습니다. 돈을 앞세우기보다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가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남다름(different)이 느껴졌습니다.
휴대폰 배경에 항상 써놓고 다니는 물음표(物蔭表)라고 합니다. 자신있게 보여주는 모습에 놀랍고 기뻤습니다. 단순히 전달만 하는 강연이 아니라 학생들의 이야기를 이끌어 낼 수 있어서 뿌듯했습니다. 다음부터는 더욱 많은 질문을 해야겠습니다.
자신감에 차있는 진지한 눈빛, 언젠가 또 만나게 되리라 서로 다짐했습니다. 현재 자신의 이름은 부모님께 여쭤보니 역술인에게 부탁해서 지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자기만의 이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친구를 만나니 두 시간 강연 후 였는데도 힘이 났습니다.
이야기를 저만 듣기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함께 있던 친구들에게 해줄 수 없느냐고 했습니다. 주저하지 않고 자신있게 논리적으로 물음표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18세, 이 친구의 미래가 기대됩니다. 사인을 해주더니 저에게 꼭 갖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이 값어치가 얼마가 나갈 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저는 완전 설득당했습니다. 꼭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머지않아 만나겠지요.
당당하게 설명하는 모습이 멋지지요?
누군가에게 잊혀지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은 정말 중요합니다. 이 친구가 가진 이러한 능력을 누군가 잘 발견하고, 그 에너지를 좋은 곳에 쓸 수 있게끔 힘을 불어넣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직접 싸인한 것을 받아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소중한 새로운 경험입니다.
제 명함을 받고 즉석에서 본인의 명함을 만들어 준 친구 양지현씨. 언젠가 함께 프로젝트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태양의 따뜻한 기운을 느껴졌습니다. 수줍게 웃었지만 그 열정을 믿습니다.
<사진을 올리지 않기로 했던 양지현씨의 약속을 어겨서 죄송합니다. ㅠ_ㅠ 깜박했다는 핑계를 댈 수 밖에 없네요> 사진 내립니다.
조금 어려운 이야기도 끄덕끄덕하며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기뻤습니다. 지금까지는 제 이야기를 풀어내는 강연을 했다면 조금더 공부해서 더욱 쉽게 개념을 풀어줄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더욱 많은 노력을 해야겠지요. 이노베이션, 크리에이티브, 인문학에 대한 공부!가 지금 필요합니다.
꼼꼼한 담당 선생님 덕분에 강연 후기를 받았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수지고등학교 임진혁 학생이 방명록에 남겨준 후기
2011/12/27 00:18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12월26일 수지고등학교에서 강연 직접 들었던 학생입니다. 음 전 일단 남학생입니다. 이름은 임진혁이고요.강연 듣는 도중에도 계속 연락처를 따서 이메일이라도 써야겟다 써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강연을 마치시자마자 인기가 폭발하시는 바람에 명함 획득에 실패했어요ㅜㅜㅋ 그치만 이렇게 개인블로그라는 더 좋은 곳이 있었네요 다행입니다.
오늘 강의를 하러 처음 들어오셨을때 처음 들었던 생각부터 '오 저사람 멋있다' 였어요. 물론 준수하신외모도 그 요인 중 하나였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염지홍님의 자신감때문이었던 것이라고 생각되네요 우선 그점이 멋졌습니다 저는 제가 못난편은 아니지만 또 그렇게 잘난편도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말하자면 저 자신에 대한 자신감! 이 조금은 부족한 편이라고 느끼는데 제일 먼저 그점을 배웠어요.
두번째로는 디자이너님께서 말을 정말 잘한다는 걸 느꼈어요ㅋㅋ 물론 많은 노력과 함께 수차례 강연을 하면서 다듬어진 실력이시겟지만 조리있고 전달력있게 말씀하시는 모습도 정말 인상깊었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 설 기회도 거의 없었고 말주변이 뛰어난편이 아니라서 두번째 배울점이라고 느꼈죠.
세번째는 바로 염지홍 패션 디자이너님의 열정! 네 바로 열정이요. 살아오면서 '열정'이라는 단어를 꽤나 많이 봐온것 같은데 여태까지는 그 의미가 그다지 크게 다가오지는 못했어요. 그런데 오늘 강의에서 눈앞에서 생생히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셔서 그 열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심장이 뛰고, 어떤 것을 생각해내고 그것을 세상에 전달하는 것 또 기꺼이 그 열정을 알아보고 도움을 주거나 이어나가는 사람들. 모두 그 열정에서 뿜어져나간 산물이었겠죠. 정말 인상이 깊었습니다. 이전에는 '열정'이란 단어가 어렴풋햇지만 오늘 강의로 인해 또렷히 새길 수 있었습니다 사실 강의 초중반부에는 제가 느낀 것은 '부끄러움'이었습니다. 헌데 강의를 계속해서 들으면서 그 부끄러움이 제 안에서 일종의 열정의 씨앗으로 변한 것 같아요.정말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강의는 저뿐만 아니라 많은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제 주변 친구들 모두 깊이 감명을 받았더라고요. 이전에도 과학 분야의 석학분을 모신 강의를 들은적이 몇번 있었지만 그런 강의와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어요. 보통 아이들이 지루해하는 그런 강의가 아닌 진짜 강의요.뭐 제가 두서없이 쓰고 모바일기기오 작성한거라 맞춤법도 틀린곳이 있을텐데 참고해주세요..ㅋ
고3의 문턱에 발을 디딘 지금 시기에 제게 큰 도움이 된 강의였습니다. 안타까운 점이 한가지 있다면 다른 아이들은 직접 강의를 눈앞에서 보지 못했다는 점이에요.ㅎㅎ오늘 여자친구가 불평을하더라고요ㅋㅋ 학교측에서 그렇게해버렸으니.. 교실에서 듣다가 '아 나도 지금 당장 이 문제를 해결해볼까?'했지만 결국 실행에누옮기지 못했다네요ㅎㅎ말이 길어졌네요 이만 마무리 하겠습니다. 오늘 좋은 강의 감사했고요 말씀하신대로 꼭 성공해서 다시 한번 연락드리는 일이 조만간 있도록 노력해야겠어요. 앞으로도 힘내시고 더 큰 열정을 세상에 전하시길 바랄게요. 화이팅!
한 시간 반동안 마이크도 일부러 쓰지 않고 기계를 대신해서 몸으로 울림을 전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여러번 전했던 이야기지만 무대에 설때면 처음 이야기하는 것 처럼 설렙니다. 스크린이 크고, 천장도 높고, 공간이 넓은 좋은 강연장에 보여주고 싶은 사진을 띄워놓고 이야기 할 수 있어서 더욱 설렜습니다. 예정된 시간보다 30분이나 더 무대에 서 있었는데요. 마치고 내려오니 조금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뻤던 것은 행사를 기획했던 친구들로부터 추억으로 남길 수 있는 멋진 사진을 받았기 대문입니다. 좋은 카메라로 잘 찍어 주었는지 에너지가 담겨있어서 좋습니다. 정말 제스처를 많이 쓰는군요!
카메라를 보았을까요? 청중을 보고 있었을까요? 잘 기억이 안납니다.
태극기가 옆에 펄럭이는 사진을 보고 있으니 마치 국가대표 선수가 강연하는 듯 합니다. 하하
연세대학교 앞에서 바나나를 팔았던 옛날 이야기.
제 키의 두 배가 넘는 큰 스크린! 저도 갖고 싶네요!
한국거래소는 예전 증권거래소의 옛 이름인데요. 바닥에 빨간 카페트가 쫙 깔려있어서 Passion Designer와 잘 어울리죠?
팡을 벌리고 마치 동의를 구하는 것 같은 동작을 하고 있네요! 여러분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라고 이야기 하는 듯!
손가락 두 개로 무엇을 표혀하려고 했던 걸까요? 윈드서핑하는 모습이 그려진 파란셔츠가 시원해보입니다. 그렇지만 정작 강연장은 자켓입고 이야기하느라 더웠습니다!
강연장의 반응과 그 이후 이메일, 페이스북, 문자 등으로 반응이 좋았던 신나는 날이었어요!
2011년 7월 25일 월요일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최한 국제축구심판 임은주씨의 강연에 다녀왔습니다. '진정한 열정과 도전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주제로 강연이 진행되었습니다.
여성최초 국제심판으로서 많은 주목을 받았던 분입니다. 경기복을 입은 모습을 수 년전에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남자 축구 심판들과 동등한 자격으로 경쟁하며 자신의 영역을 개척해나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좌우를 보지 않고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열정적으로 달렸다고 했습니다. 강연을 통해 축구경기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했던 심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심판에게도 경기력이 필요하며, 선수들과의 호흡을 맞출 수 있어야 하고 경기를 조율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경기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예측할 수 있어야 좋은 심판으로서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어드밴티지룰를 과감하게 적용하며 경기의 박진감을 높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나는 선수들에게 반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남자 심판들은 다친 선수들에게 빨리 일어나라고 반말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나는 '괜찮아요? 팀닥터 불러줄까요?' 라고 말을 걸었습니다. 그러면 오히려 더 빨리 일어나서 경기를 빠르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스마일 심판으로 불렸지만 항상 웃기는 정말 어려웠습니다. 스스로를 매니지먼트하는 노력이었습니다. '
축구 심판은 경기를 제어하고, 휘슬을 불고, 옐로카드를 주고 퇴장을 시키는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어, 통제보다 원활하게 경기가 진행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 중요함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축구경기와 도로교통과도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교통안전 옐로카드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축구의 옐로카드의 유래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1970년대 이전에는 축구경기에 옐로카드, 레드카드 등 심한 반칙을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는데, 한 심판이 교통신호등의 빨간색, 노란색 신호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합니다. 빨간색은 지나면 안된다는 신호라기보다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차량이 있으니 멈추어 서서 기다려 달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더욱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옐로카드 캠페인을 기획하면서 어린이들을 도로에서 보호받는 수동적인 대상보다,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권한을 가진 주도적인 심판과 같이 여기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축구심판, 그 중에서도 임은주 국제심판을 만나서 아이디어를 전하겠다고 노트에 써놓았던 기억이 납니다. 강연이 끝나고 인사를 드리며 진행중인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했고, 친숙한 스포츠인 축구와 심판의 이미지를 활용하여 어린이 교통안전문제를결하는 데 도움을 얻고자 부탁을 드렸습니다.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과 연결되어 어떻게 프로젝트를 풀어나갈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의상이나 두발을 유행하는 스타일로 만들고 꾸미는 패션 디자이너가 아닌, 어떤 일에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을 가진, 열정을 디자인하는 패션 디자이너(Passion designer)를 아는가. 우리가 만난 주인공은 올해 서른이 된 1인 기업가이자 발명가, 그리고 패션 디자이너인 염지홍 씨다. 대한민국의 전도유망한 내일을 책임질 청년 기업가들이 운집한 강북청년창업센터, 연구실을 방불케 하는 공간에 제각각의 사업 아이템 개발에 열중하고 있는 청년 기업인들 사이에 옷걸이를 이용해 독서대를 만들어 주목받고 있는 그가 무언가에 골몰해 있다.
‘공자가 서른 살에 자립해서 생겼다는 이립(而立)’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20대 초반부터 자신의 뜻과 의지를 펼치며 자립하는 삶을 살고 있는 염지홍 씨, “IMF의 칼바람이 저희 집에도 예외 없이 불어 닥쳤죠. 그때 아버지와 함께 가족 사업으로 시작했죠”라며 피자사업을 시작한 이야기를 꺼낸다. 피자가게를 시작하면서 똑같은 돈인데 고객들이 동전을 주는 것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것에 착안, 전국민 동전사용하기 캠페인인 ‘Let’s coin’을 벌였다는 그는, 이 일을 통해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새로운 기회가 보인다는 경험을 얻었단다. 동전사용 활성화로 자영업자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또한 동전의 일부를 유니세프에 기부하는 등의 이색 마케팅이 화제가 되면서 이슈에 중심에 선 염지홍 씨. 하나의 시작은 또 하나의 시작을 만들어내는 그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고와 행동은 지난해 1인 기업가로서 또 다른 자립의 기회를 만들어 강북청년센터에 들어오게 되었고, 그로 인해 더욱 바빠졌다. 최근 두 개의 사업 아이템으로 공공기관, 그리고 기업들과 사업추진에 관해 논의 중이라는 그의 머리 구조가 궁금했다.
“어떤 문제나 의문점이 생기면 깊게 생각하고 관찰하면서 해결책을 찾습니다. 그리고 제 개인의 욕구가 아닌 많은 이들에게 필요한가 하는 것, 즉 수요의 차원에서 공감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봅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고 과정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그의 야무진 포부에서 진정성이 느껴진다. 위험에 노출된 상황에서 어렵게 생계를 꾸리는 노인분들을 위해 반사조끼를 나눠 주면서 착안한 반사버튼이나 피자가게에서 잠시 쉬는 틈을 타 ‘책을 어디에 좀 걸어 놓고, 읽을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에 눈앞에 있던 옷걸이를 이용해 완성된 옷걸이독서대는 각각 실용신안과 디자인 출원 중에 있다.
창의적인 생각과 발상의 전환은 열정어린 마음과 책읽는 습관에서
그렇다면 이러한 창의성과 발상의 전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이에 대한 그의 답변은 명함에 찍힌 대로 ‘열정’이었다. “열정이 있어야 자극이 되잖아요. 창의적인 것, 창조적인 것은 바로 열정이 깔려있지 않는 한, 귀찮은 망상이자 피곤한 생각일 뿐이거든요. 1인 기업가가 되어 이곳에 들어오게 만든 반사버튼 완성이나 6개월에 걸쳐 지금의 모양을 갖춘 옷걸이독서대나 모두 열정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그의 열정을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실례라면,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기록해 놓은 아이디어노트다. 그의 생각이 빼곡히 적힌 사이사이에 그림이나 도표가 그려져 있고, 각종 자료들이 스크랩된 노트가 현재 24권에 이른단다. 아이디어 창고이기도 한 이것을 종종 타인에게 빌려주기도 한다는 그의 거침없고, 열린 생각과 포부가 궁금했다.
“세상에 없던 것들을 생각해내고, 만들어내는 것이 오롯이 저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만들어 낸 창의적이라는 것이 여러 사람들의 요구와 생각들을 묻고 또 물어서 완성된 것이니까요. 그리고 저는 장기적인 계획이나 꿈을 미리 세워놓지는 않습니다. 그때그때 확신을 갖게 하는 아이템을 집중해서 실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죠. 교통사고 위험에 대비한 반사버튼이 안전용품으로 필요한 이들에게 제대로 보급되는 것과 옷걸이독서대가 국내뿐 아니라 영국과 뉴욕의 공공 도서관에 비치되는 것이 제 가까운 계획이자 꿈입니다.” 나이답지 않은 해맑은 미소와 열정에 그의 꿈은 이미 날개를 단 듯하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 열정을 끌어내고 생각을 일으키고 행동하게 만드는 것, 그래서 세상에 없던 창의적인 물건들을 만들어내는 원천은 무엇일까. 보물창고 보여주듯 별도의 공간에 마련된 캐비닛을 열어 보이며 ‘책’이라고 말하는 염지홍 씨.
“독서를 통해 저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사고에 뚜껑이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열 수만 있다면 직접 머리 뚜껑을 시원하게 열어주고 싶어요. 하하하!” ‘패션 디자이너가 머지않아 정식 직군(職群)으로 자리 잡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오늘의 만남이 그에게 또 어떤 크리에이티브를 만들어내는 단초로 작용할까. 1인 기업가이자 발명가, 그리고 패션 디자이너인 염지홍 씨에게 ‘열정의 크리에이터’라는 새로운 닉네임을 헌정해본다.
조금 뒤늦은 자료지만 올립니다. 저를 직접 찾아와서 이야기를 들어주셨던 한 분 한 분께 감사드립니다. 아! 사진을 찍어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저의 청년시절 이야기가 이렇게 다른 사람의 입으로, 손으로 정리될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